


기지개를 켜며 시간을 확인했다. 여섯 시 반이었다. 창문으로는 어스름한 새벽빛이 스미고 있었다. 밤을 꼴딱 새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야 할 만큼 바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고,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 밀린 서류며 하루에도 수십 건씩 올라오는 보고서 처리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촛불이 흔들리며 방안에 흔들리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다 나인하트는 펜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저히 머리가 맑아지지를 않았다.
창문을 살짝 열자 아직 쌀쌀한 공기가 훅 들어온다. 산책이라도 할까 싶었지만 기온이 너무 차다. 그러고 보니 이른 아침 페리온 유적 조사단 측에서 뭐 하나를 보고하러 온다고 했었는데. 자리를 비웠다간 그 정보기사가 헛걸음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나인하트는 조용한 에레브 숲을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맞추어 볼 서류가 하나 있었는데, 그게 어디에 있었더라……. 기억을 더듬으며 책상 아래쪽 구석 서랍을 열었다가 뜬금없는 것과 마주치고 말았다. 동시에 나인하트의 미간이 사정없이 찌푸려졌다. 반짝거리는 포장지와 깜찍한 리본으로 싸인 그것은,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데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잊혀 서랍 구석에서 며칠을 썩고 있던 그 날의 잔여물이었다. 그러니까, 커다란 전쟁을 치른 후로 아직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바쁜 와중에까지 그딴 상술로 가득할 뿐인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 눈에 띄었다간 감봉을 면치 못하리라고 그토록 엄포를 놓았는데도 부득부득 제 집무실로 초콜릿을 보내오는 간 큰 기사가 한둘씩 나오기 마련이었다. 아니, 대체 왜 저에게? 좋아하지 않는단 걸 알면서도? 거기다 나인하트는 단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제 집무실 창가에 놓인, 초콜릿인 게 분명한 이것을 발견한 나인하트가 미간을 짚으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걸 누구한테 떠넘겨야 하나 하는 고민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쉬며 나인하트는 그것을 꺼내 책상 한구석에 올려두었다. 오늘은 처리해야겠군. 찾던 서류도 마저 찾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인하트는 뭐라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였다. 나인하트는 방금 막 내린 커피를 잔에 따르고 있었다.
"들어오십시오."
문을 열고 작은 체구의 기사가 살짝 고개를 내밀었다. 보고서를 든 채 쭈뼛거리는 정보원에게 나인하트는 책상 앞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다. 보고서뿐만 아니라 현장 설명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커피 마십니까?"
"네? 네."
어색하게 대답하는 기사에게 커피 잔을 건네고 나인하트는 책상 너머에 앉았다. 기사가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고는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조금 홀짝였다. 인상이 구겨진다.
"설탕 거기 있습니다."
나인하트는 본인은 쓸 일이 거의 없는 각설탕 그릇을 가리켰다. 기사는 설탕을 두 개나 집어넣었다. 티스푼으로 휘휘 젓다가, 옆구리에 끼고 있던 보고서를 들어 나인하트에게 건넸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나인하트는 보고서를 받아 넘겨보았다. 분량이 꽤 되었다. 목차와 서론만 빠르게 훑고 다시 내려놓았다. 의아한 얼굴의 기사에게 나인하트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얘기할 것도 있는데 일단 좀 마시고 하죠."
"예."
"아침부터 고생이 많군요. 현장이 많이 바쁩니까?"
"그런 편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진척이 있는 곳이라."
잠깐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기사는 꽤 긴장을 놓은 눈치였다. 따뜻한 커피 잔을 양손으로 쥐고 책상 위를 구경하던 기사의 시선이 구석의, 이 장소뿐만 아니라 나인하트라는 사람에게도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물건에 잠깐 멈추었다.
나인하트도 그것을 보았다. 돌연 변명 같은 소리가 튀어나왔다.
"받은 겁니다."
"아, 발렌타인……."
저도 모르게 아는 척하던 기사가 나인하트의 눈총을 받고 어깨를 움츠렸다.
"드릴까요? 가지셔도 됩니다."
"바… 받은 거 아니에요?"
"그럼 같이 먹죠."
기사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나인하트가 그것에 손을 뻗어 윗부분의 리본을 풀고 포장을 벗겼다. 포장재들이 가차없이 책상 밑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것을 기사는 하릴없이 눈을 깜박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산 건지 만든 건지 알 수 없는 초콜릿 몇 알이 들어 있었고 나인하트는 기사에게 하나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기사는 잠시 머뭇거리다 초콜릿을 받았고, 나인하트도 선호하지 않을 뿐이지 안 먹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를 무안하게 하지 않기 위해 입에 넣고 한 번 깨물었다. 그리고 곧장 입안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맛의 향연에 혀를 굳혔다. 달아서가 아니었다. 그 정반대였다.
이건…… 대체. 암살 시도인가? 독이 들어 있는 것인가? 이것을 초콜릿이라고 부를 수 있나? 나인하트는 기사를 보다 마찬가지로 충격에 휩싸인 그의 얼굴과 마주쳤다. 뱉어 버릴 수는 없었으므로 씹기는 하는데 그럴수록 퍼지는 쓰디쓴 맛에 나인하트는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문득 떠올렸다. 책사님이 단 걸 안 좋아하셔서 특별히 99% 카카오 초콜릿으로 준비했어요… 분명 그런 쪽지가 붙어 있었고 앞뒤로 온갖 다시 떠올리기 싫은 문장이 붙어 있었기에 함께 기억 저편에 묻어 버린 뒤였다. 그 말대로, 달지는 않았다. 그러나 두 번은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긍정적으로는, 확실히 잠이 깼다. 카페인이 돌기도 전에 눈이 번쩍 뜨이고 정신이 들었다. 죽상을 하고 커피에 각설탕을 하나 더 집어넣는 기사에게 나인하트가 중얼거렸다.
"못 먹겠네요, 이거……. 확인도 안 하고 드려서 미안하군요."
"아, 아닙니다."
"커피 더 드릴까요?"
"……예."
잔 두 개에 다시 커피를 따르고, 이번에는 나인하트도 설탕을 넣었다. 어느새 방 안에 번진 아침햇살이 말없이 잔을 젓는 두 사람의 머리 위에도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