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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햇살은 뜨거웠다. 봄이 가라앉고 여름에 접어들 시기라 더욱 그랬다. 차양 없는 놀이공원 한복판에서는 더더욱.
소풍 가는 것 같고 즐겁겠다며 웃는 얼굴로 집을 나섰는데 좋아하지도 않는 햇빛을 받으며 반나절을 걸어다닌 탓에 주군의 심기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원체도 뭔가에 쉽게 질려하신다. 한팔에 이령이 떠넘긴 서류며 연구 자료 뭉치 같은 것들을 안아든 노아의 시선이 찰랑이는 연분홍빛 머리카락과 제가 아침에 섬세하게 매어주었던 리본과 그 아래서 나풀거리는 치맛자락을 지나 구두굽 위 부러질 듯 위태한 발목에 잠시 머물렀다. 체면이 있지 발을 쾅쾅 구르며 짜증을 표출하지는 못했으나, 늘 곁을 지켜 온 그의 수호기사가 보기에 걸음걸이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저러다 넘어지기라도 하시면. 작은 걱정이 스쳤다. 그러나 굳이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자리에 없는 듯 조용히 제 할 일을 해내는 것이 그의 특기었기에, 주군의 걸음에 살짝만 더 신경 쓰며 노아는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흘긋 하늘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 집이었다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붙어 있다가 기지개 한 번 켜고 일어서서는 차 마시자고 하실 때쯤인데. 주군 말을 따오자면, 단 게 땡길 시간이다.
간간히 간식 따위를 파는 가판대가 보일 때마다 시선이 잠깐이지만 그리로 향하는 것을, 뒤에서 제 주군만 바라보고 있는데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뭐라도 드시면 기분이 좀 나아지실까? 뭘 드시고 싶어하시려나. 사두었던 재료와 찻잎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애프터눈 티 세트 따위를 못내 떨치지 못하는데, 마치 이제야 발견했단 듯 이령이 한마디를 뱉었다.
"어, 솜사탕."
이령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면 과연 솜사탕을 파는 작은 수레가 있었다. 사람이 없어 지루한 건지 따분한 표정의 상인 머리 위로 분홍빛 솜사탕이 구름처럼 피어 있었다.
"드실래요?"
보일 듯 말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은 그쪽에서 떼질 못하는 걸로 이미 대답은 충분했다. 값을 치르고 돌아와 솜사탕 막대를 건네고 받으며 잠시 손가락이 겹쳤다. 한참 아래의 시선에서, 손안에 담길 듯 조그마한 주군이 양 볼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고 달콤함에 대한 기대를 비쳤다. 정말, 누가 솜사탕인지 모르겠군…,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떠올린다. 금방 사라져버릴 듯 가볍고 몽실몽실한 설탕 뭉치를 보물 바라보듯 소중히 관찰하던 이령이 마침내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귀퉁이를 뜯어내었다. 손길을 따라 폭신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모양마저 주군을 닮았다고, 무례한 줄은 알지만 그런 생각을 멈추지는 못하며, 노아는 제 주군이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단맛을 음미하다 혀로 입술을 핥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솜사탕일 뿐인데, 몹시도 감미로운 것을 맛보듯 얼굴 위로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이령이 고개를 들었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노아의 위치와 시선은 늘 지금과 같은 곳이었다. 그러니까 갑작스럽게 어색함을 느끼고 그러는 것은 아니었겠지만, 제 발 저리듯 주군의 행동 하나하나를 눈길로 훑으며 했던 생각이 들린 건 아닐까, 반작용에 가까운 걱정이 살짝 내려앉다 흩어졌다.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에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히는 노아의 반응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령은 그저 중얼거리듯 한 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노아 것도 사지."
"아, 저는…."
먹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주군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예의상 하는 말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노아는 변명처럼 구태여 답하려고 했다.
"알아, 단 거 싫어하죠."
혀끝을 감아 유린하는 자극보다는 밋밋한 담백함을 더 선호하는 노아로서는 이령의 미각 취향에 도저히 따를 수가 없었다. 사실 싫어한다기보다는, 늘 달디단 것은 이령이 선점하고 나머지를 노아가 차지 내지는 처리하는 식이었기에 본의 아니게 무미에 가까운 것들만 입에 넣게 된 것에 가까웠지만, 제 모든 것은 주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었으므로 아마 취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먼저 얘기를 꺼내 놓고 혼자만 먹는 것이 무안했는지 다시금 주군의 가는 손가락에 감긴 한 점 솜사탕이 불쑥 얼굴에 내밀어졌다. 으레 그러듯 표정 없는 얼굴로 눈만 깜박이는 노아에게 이령이 같은 얼굴로 응수했다.
"먹어 봐요."
거절할 권리 같은 건 없었다. 허리를 숙여 손가락까지 삼켜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입안이 받아 넣었다. 어라, 입으로 받아먹을 줄은. 그런 당황이 이령의 얼굴에 스쳤다. 그러나 잠깐 새에 사라져버리고 감상을 종용하듯 제 기사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달다…는 감상밖에는 들지 않았지만, 노아는 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게 어떤 답을 원해서인지 어떤지 긴가민가한 채로 긍정을 표했다.
"맛있어요."
"거짓말."
이령이 작게 눈썹을 휘며 새침하게 받아쳤다. 아, 주군이시여.
"네. 너무 달아요."
"그게 맛있는 건데."
이령은 한 입 더 솜사탕을 먹었다. 아까보다는 그래도 한결 산뜻해진 발걸음을 다시 옮기며 뒤를 따라붙는 노아에게 이령이 문득 덧붙였다.
"그래도 노아가 해준 차랑… 쿠키 먹고 싶다."
"어떤 거 만들어 드릴까요?"
"으음… 그, 초콜릿이랑 아몬드 들어간 거."
"돌아가면 바로 만들게요."
"네에."
점심식사도 하셔야 할 텐데. 그럼 샌드위치를 준비하자. 그런 가벼운 생각을 하며 노아는 이령의 뒤를 따랐다. 시선은 여전히 솜사탕처럼 나풀거리는 이령의 뒷모습을 향한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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