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는 실제보다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경향이 있다. 사실 마법이나 과학이나 끊임없는 가설과 입증, 명확한 인과에 따라서만 작동된다는 법칙 아래 동일하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이 설명할 수 없다면 실현되지 않는다. 마법 또한 마찬가지다. 우뚝 펜이 멈췄다. 오즈는 수식으로 가득한 양피지를 내려보다 한숨을 뱉었다. 또…. 그녀가 양피지를 찢자 마주 앉아있던 부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들은 불을 다루는 마법사들이었다. 아무리 정령의 가호를 받는다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불에 친화력이 있는 플레임위자드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들을 제외한 사람들에게 불이란 어느 신화가 기술했듯 양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위험한 면모. 속성의 특성상 조금의 오차가 걷잡을 수 없는 피해로 번질 수 있기 십상이니 그들에겐 과감하면서도 무엇보다 세심한 수련이 요구되었다. 그러나 말이라면 뭐든 못 하겠는가. 사람인 이상 그런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그런 걸 심신 수련으로만 해결하긴 무리였다. 그때 필요한 것은 바로…
“사탕 남았나요?”
부관은 주머니를 뒤졌다. 양피지며 서적이며 지저분한 책상을 헤집어봐도 남은 게 없었다. 그들은 허망한 얼굴로 진작에 까먹은 사탕 껍질을 만지작거렸다. 무슨 정신으로 쓴 건지 그 위에도 계산식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적혀있었다. 심지어 틀렸네. 휘갈긴 글씨를 내려다보다 오즈는 껍질을 구겼다. 부관이 사탕이 담겨있던 통을 뒤집었다. 탈탈 털어도 나오는 건 없었다. 아까 드신 게 마지막이었나 봐요. 오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에 다녀올 테니 기다려요. 그녀가 휘청이며 문 앞으로 가자 부관이 다급히 그녀를 붙잡았다. 단장님 꼭 돌아오셔야 해요. 저 내일 오후에 파견 나가는데 오늘 못 끝내면 저희 진짜…. 거의 절규였다. 오즈는 이를 악물었다. 당연하지. 그사이 잠들지나 말라고!
에레브에서 기초 수련을 끝마친 기사들은 제일 처음 빅토리아 아일랜드로 파견을 나가고, 그 뒤론 대륙 각지에서 검은 마법사의 동태를 확인하며 수련에 정진했다. 간혹 에레브에 복귀한 기사들은 선물을 사오기도 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단장이 무슨 취향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선물로 받은 걸 홀라당 까먹어버릴 순 없고. 게다가 포장은 왜 하나같이 예쁜지. 숙소 선반 하나를 다 채운 색색의 사탕 병을 보며 오즈는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밤을 새울 것 같으니 양이 많은 게 나을 것이다. 그녀는 큰 양철통을 챙겨 들고 숙소를 나섰다. 커피 맛으로 챙길 걸 그랬나? 아니지. 커피는 타 마셔야지…. 에레브의 밤은 고요했다. 섬은 높은 고도에 있었고 덕분에 닿지 않을 거리에 있는 것들을 남들보다 가까이서 구경할 수 있었다.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한때 세상을 떠돌았을 섬이 멈춘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시절은 오즈가 모르는 것이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그 날 에레브는 다시 움직일 것이다. 끊임없이 하늘을 부유하는 기분은 어떨까. 거대한 위협이 사라진 세계를 내려다보는 것은. 그 미래는 막연한 상상이 아닌 그들의 이뤄야 할 사명이기도 했다. 그녀는 선두에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 오즈는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밤 속에서 별들은 넓게 흩뿌려진 설탕처럼 빛났다. 그녀는 먼저 몇 개 꺼내둔 사탕을 꺼냈다. 하나를 입에 물자 곧 달짝지근한 맛이 볼 구석구석을 간질였다. 사열식이 머지않았다. 그전까진 새로운 스킬을 완성해두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계획을 잡았을 땐 기한 안에 너끈히 해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질 줄이야. 시작했을 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접근이 잘못된 건 아닌데 그럼 배열을 바꿔야 하나? 구조의 문제인가? 그녀가 사탕을 입안에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을 때였다.
“뭘 그렇게 중얼거려.”
바로 등 뒤에서 울린 목소리에 오즈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홱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가면과 망토가 보였다. 이카르트…. 오즈는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목에 걸릴 뻔했잖아요. 이카르트는 팔짱을 꼈다. 가면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카르트가 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말하면 같이 고민해줄래요?”
“뭔데.”
“우선 고화력의 거대한 에너지를 미리 가열시켜놓고 마나로 그 연소를 멈춰두는 것부터 시작하는데요. 마나를 사용해 퍼즈 해뒀을 때 그 에너지에 어떠한 영향을 주어서도 안 되고, 좌표인 마법진이 완성되었을 때 오차범위 안에서 정확한 시간과 위치에 떨어질 수 있도록….”
“비전공자 알아듣게 말해주면 안 되나?”
“하고 있잖아요?”
“…….”
“엄청나게 크고 센 불덩이 폭격이요.”
“고맙군.”
애초에 그가 정말로 조언이나 돌파구 찾기를 고민해줄 거란 기대는 없었다. 밤새는 건 진짜 못 할 짓이에요. 오즈가 투덜거렸다. 글쎄. 이카르트가 대꾸하자 오즈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맞추고 있던 가면이 슬그머니 돌아갔다. 왜? 그가 물었다. 이렇게 어두운데도 가면을 쓰고 다닐 필요가 있나 싶어서요. 이카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즈는 양철통을 열었다. 손 내밀어봐요. 그녀가 사탕 껍질을 까는 동안 이카르트는 멀뚱히 서 있었다. 손 내밀어 보라니까요. 재촉하는 말에 귀찮다는 듯 손바닥을 펴자 오즈는 그 위에 사탕을 올려놓았다.
“당 챙겨요.”
그는 제 손안에 올려진 사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왜 굳이 까서 줘?”
“그걸 정성이라고 하는 거예요.”
“별 게 다 정성이군.”
“고맙다는 말은 됐네요.”
이카르트는 손가락으로 사탕을 집었다. 오즈는 그가 빈손을 들어 가면의 턱 부분을 조금 들어 올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그 안으로 사탕이 사라지는 것을 제대로 구경하기 전에 도로 가면이 덮였다. 화려하지 않은 문양의 가면이 다시 얼굴을 가렸다. 먹기는 하는 건가. 행여 보일세라 오즈가 눈을 가늘게 뜨자 이카르트는 고개를 돌렸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지 그래. 네 부관은 다 죽어가던데. 그가 말했다. 헉, 맞다. 당장 내일 파견이라던 부관의 말이 생각났다. 오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럼 먼저 가요! 이카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꾸했다. 연구실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다시 가면을 떠올렸다. 조금 들린 가면 밑으로 입술이 잠시 움직이는 모습은 찰나였고 그마저도 어두워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까서 주면 가면을 벗을 줄 알았더니 역시 쉬운 사람이 아니었다. 이거 얄밉네…. 언젠가 저 가면을 벗겨보리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는 다 녹아가는 사탕을 오독오독 씹었다. 그러나 일단 할 일부터 해치우는 게 먼저였다.
어느덧 창밖은 어슴푸레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커먼 눈 밑을 문지르며 양피지와 스태프를 챙겼다. 집무실을 나왔을 땐 새벽의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 여느 때 같았으면 상쾌할 풍경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에겐 이 시간을 즐길 체력도 여유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연무장 구석에 결계를 걸어두고 마법진까지 준비가 되었을 땐 거의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오즈는 집중했다. 그녀가 스태프를 치켜들었다. 아직 태양이 뜨지 않은 하늘이 서서히 발 구르는 소리를 내며 붉어지기 시작했다. 곧 요란한 울림과 함께 불덩이가 얼굴을 내밀었을 때, 그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성공이라는 확실한 예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까지 오즈는 밀린 잠을 자느라 바빴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잤다. 짧은 휴가를 보내고 복귀했을 땐 몸도 머리도 개운했다. 질질 끈 일을 해결했을 때보다 후련한 건 없다. 오즈는 기지개를 켜고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직 까지 않은 사탕이 남아있었다. 오즈는 껍질을 벗겼다. 연구실에 박혀있는 동안 그렇게 먹었는데도 질리지 않았다. 이것도 중독인가? 입을 오물거리는 동안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단상은 한적했고 높게 솟은 나무 위도 비어있었다. 불현듯 지난 새벽이 떠올랐다. 이카르트가 가면을 쓰는 건 아무래도 그가 기사단에서 도맡은 역할 때문이 크겠지만, 그런 직업적인 것을 떠나 그 무심한 성격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일 년 내내 이카르트가 가면을 벗지 않는 건 아니었다. 오즈는 그 아래 있는 얼굴을 알고 있었다. 누구나 날카롭다고 생각할 인상이었다. 자주 가려져 있는 탓에 전체적인 모습은 그런 식으로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길게 빠진 눈꼬리, 거뭇했던 눈 밑이나 그리 크지 않았던 입 같은 것들은 따로따로 떠올랐다. 이카르트는 단장들 가운데 제일 늦게 들어왔다. 같이 지낸 시기가 다른 이들보단 짧아도 에레브에서 이때까지 나름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그럼 좀 편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거리를 두는 그 고집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불현듯 섭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오즈는 그가 앉아있던 자리를 쳐다보다 단상에서 내려왔다.
전당을 지나 갈림길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단장님! 막 복귀한 부관이 손을 흔들었다. 그제는 수척한 얼굴로 헤어졌는데. 활짝 핀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함께 고생했던 게 떠올라 좀 뭉클하기도 했다. 벌써 복귀한 거예요? 오즈가 환하게 인사를 받았다. 부관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보고보단 안부에 가까운 얘기를 나누는 동안 부관이 챙겨온 물건을 꺼냈다. 이건 단장님 몫이에요. 오즈는 부관이 건넨 봉투를 확인했다. 이게 뭐예요? 그녀가 부스럭거리며 포장을 뜯었다. 막대 끄트머리를 잡고 꺼내자 나란히 꽂혀있는 딸기가 보였다. 설탕으로 코팅된 딸기들은 반질반질한 빛깔을 내며 달큰한 향을 냈다. 아는 모험가한테 녹지 않는 마법까지 부탁해가면서 가져온 거예요. 부관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과일 맛이 나는 사탕은 많이 먹어봤지만 이렇게 과일을 통째로 사탕으로 만든 건 새로웠다. 이거 씹어먹어요? 오즈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네. 딱딱하긴 한데 그냥 사탕보단 나아요. 와…. 오즈는 요리조리 사탕을 둘러보았다. 아담한 크기의 딸기들은 씹어먹기 아까울 정도로 반짝였다. 고마워요. 오즈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부관도 같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뭘요. 밤새면서 단장님 사탕 엄청 얻어먹었잖아요. 부관은 경례를 하곤 보고를 마치러 자리를 떠났다. 곧 마법이 풀릴 테니 어서 먹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하나씩 물어 먹어야 하나? 아니면 손으로 떼어서? 단상으로 돌아가는 동안 오즈는 사탕을 어떻게 먹을지 궁리했다. 좀처럼 입에 대지는 못하고 입술만 달싹이던 때 그녀의 눈이 나무 위로 향했다. 어느새 자리 주인이 돌아와 있었다. 나무 그늘 속에서 어딘가를 보고 있던 가면이 오즈 쪽을 향했다. 오즈는 그 모습과 사탕을 번갈아 보았다. 이거라면…. 그녀는 이카르트를 향해 손짓했다. 그는 잠시 지켜보다 가뿐히 나무에서 내려왔다. 꽤 높이가 있는데도 소리 없이 착지하는 모습을 보고 새삼 그녀는 감탄했다. 이카르트는 오즈 앞으로 걸어왔다. 왜 불렀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는 우뚝 선 채 오즈가 용건을 말하길 기다렸다. 오즈도 마찬가지로 사탕을 내밀 뿐이었다.
"이게 뭐야?"
"과일사탕이래요."
"이걸 왜 나한테 줘."
"당 챙기라고요."
"됐어."
오즈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이거 무지 귀한 거예요. 빨리 안 먹으면 녹아서 그냥 설탕절임이 될 거라고요. 그녀가 부러 급한 것처럼 말해도 이카르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럼 빨리 먹을 것이지 뭐하러 들고 있어? 이카르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맛있는 건 나눠 먹으라는 말도 몰라요?"
"몰라."
"진짜 무슨 재미로 살아…."
"뭐?"
"챙겨주는 사람 성의 좀 생각해주면 안 돼요?"
가면 앞으로 불쑥 사탕을 들이밀자 이카르트가 한 발짝 물러섰다. 곧 가면 뒤에서 작은 한숨이 빠져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곧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가면 위로 손이 올라갔다. 역시! 이거라면 얌체같이 턱만 들 수도 없을 것이다. 오즈는 내색하지 않고 그가 가면을 벗는 것을 지켜보았다. 잘 깎인 턱 위로 입술은 여전히 고집스럽다. 꾹 다문 입술 위로 날렵한 코끝이 보였다. 시선을 따라 내려간 속눈썹 끝이 살짝 흔들렸을 때 오즈는 오랜만에 이카르트의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눈동자도 어두운색이었지. 머리카락보단 아니지만. 오즈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이카르트는 빈손을 들었다. 그리곤 사탕을 쥐고 있던 손을 감쌌다. 서늘한 감촉이었다. 그가 고개를 숙였다. 딸기를 물자 얇은 설탕 코팅이 바삭이며 간지러운 소리를 냈다. 이카르트는 살짝 미간을 구겼다. 그가 고개를 뗐다. 잡았던 손도 마찬가지였다. 한쪽 볼이 티 나지 않을 만큼 볼록이며 움직였다. 그럴수록 표정은 보기 좋게 구겨졌다.
“달아.”
그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말을 끝내기 무섭게 누가 볼 새라 다시 홱 하니 가면이 올라갔다. 도로 가려진 얼굴에 아쉬워할 틈도 없었다. 오즈는 순간 같았던 장면을 되새겼다. 이건 꽤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사탕이니까요!